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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림(Supreme)이라는 브랜드를 들어본적 있는가?

사람들은 왜 슈프림(Supreme)에 열광할까
 
2016 F/W 슈프림 컬렉션 프리뷰(출처 : http://www.supremenewyork.com/)
 
2016년 8월 3일, 패션 브랜드 슈프림(Supreme)의 2016년 F/W 컬렉션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프리뷰 사진이 담긴 온라인 기사가 패션 미디어 웹사이트 하이프비스트(Hypebeast)에 업로드 되었다. 그런데, 업로드 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사이트가 마비 되는 초유의 사태기 연출되었다. 슈프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앞다퉈 새로운 슈프림의 제품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구경 하기 위해 기사를 클릭 했고, 뜨거운 열기에 순식간에 대형 호스트 서버가 다운 되었던 것이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건, 혹은 관심이 없는 사람이건 누구나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한 번쯤은 빨간 박스안에 흰색 글자로 슈프림이라고 적혀있는 티셔츠, 모자, 악세서리 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슈프림이 22년간 함께 해온 박스 로고로 어떤 이들은 슈프림을 두고 스케이터들만의 패션 브랜드라고 폄하하고, 다른 이들은 슈프림을 스트리트 브랜드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슈프림은 어떠한 단어나 특성으로 규정되지 않는 브랜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슈프림 CEO 제임스 제비아(출처 : www.complex.com)
 
슈프림은1994년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에 의해 설립된 이래 여러 가지를 만들어냈다. 슈프림만의 정신, 슈프림의 행동 강령, 슈프림 스타일, 슈프림에 미친 콜렉터들, 슈프림을 지지하는 스케이트 보더들과 수 많은 콜라보레이션 제품들 그리고 물론 슈프림을 싫어하는 이들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이 전설이 되어버린 브랜드를 둘러싼 터무니 없는 소문들과 신화들이 이 브랜드의 역사의 순간들과 항상 함께 하고는 했다. 슈프림은 옷과 악세서리를 판매하고, 스케이트 보드를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케이트 보드를 예술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슈프림의 스케이트 보드 덱(deck)은 현대 미술의 거장들로 불리우는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 제프 쿤스(Jeff Koons)의 손을 거쳐 재탄생 되었다.
 
슈프림의 수장 제임스 제비아는 브랜드의 공공연한 인기와 명성과는 달리, 언론에 노출을 최대한 피하는 미스테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1살부터 19살까지 영국의 서섹스(Sussex)에서 자란 영국인이다. 미국인인 그의 아버지는 공군이었고, 영국인 어머니는 교사였는데, 제비아가 10살이 되던 해 그의 부모님은 이혼을 하게 된다. 그는 흥미롭게도 어린 시절 BBC에서 방영하던 ‘그레인지 힐’(Grange Hill)에서 아역 배우로 연기를 한 경험이 있다. 제임스 제비아는 어린 시절 더 페이스(The Face)나 아이디(I-D) 매거진과 같은 패션 관련 매거진 등을 보며, 런던에서 아이 쇼핑을 즐기는 평범한 젊은이였다. 패션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의 과거라고는 믿을 수 없게, 그는 한 동안 패션과 거리가 먼 건전지 전문 회사 듀라셀(Duracell)의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1983년, 그가 아버지를 따라 방문하게 된 뉴욕행은 1년후 그를 다시금 뉴욕으로 이끌었다. 그의  직장은 뉴욕 소호(Soho)에 위치한 파라슈트(Parachute)였는데, 80년대 스타일의 미니멀리즘 의상들과 빈티지 옷을 파는 옷가게였다. 그는 이 가게에서 훗날 브랜드 언디핏(Undefeated)의 창립자로 거듭나게 될 에디 크루즈(Eddie Cruz)와 함께 패션업계에 대해 배워 나갔다. 제임스 제비아는 032c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 당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난 내가 옷을 좋아한단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라고 그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6년간 일을 하면서 돈을 어느정도 모은 제비아는 곧 1989년 유니언 뉴욕시티(Union NYC)라는 편집샵을 만들고, 프레드 페리(Fred Perry), 더퍼 오브 세인트 조지(Duffer of St. George)와 같은 영국 기반의 브랜드들을 입점시켰다. 그는 자신의 가게에 브랜드 스투시(Stussy)의 제품들 또한 들여왔는데, 이것이 스투시의 창립자 숀 스투시(Shawn Stussy)와의 파트너쉽을 맺게 만든 첫 만남이었다. 1991년, 그는 스트리트 브랜드 스투시(Stussy)의 창립자 숀 스투시(Shawn Stussy)와 함께 뉴욕에 스투시의 첫 플래그쉽 스토어를 함께 운영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1994년 그의 첫 슈프림 매장을 열기 전까지 스투시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슈프림이 세워지던 때, 뉴욕은 매일 매일이 사건과 이슈로 가득했다. 힙합 그룹 우 탱 클랜(Wu-Tang Clan)이 거리로 나왔고, 아티스트 카우스(Kaws)는 버스 정류장과 빌보드 위를 자신의 캔버스처럼 사용했고, 영화 감독 래리 클락(Larry Clark)은 뉴욕 10대 청소년들의 마약, 에이즈 문제들을 담은 ‘키즈(Kids)’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제임스 제비아는 스트리트 스케이트 보드 문화와 힙합 문화가 전성기를 이루던 이 시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인터뷰(Interview) 매거진과의 대담에서 제임스 제비아는 스케이트 문화에서 오는 패기와 자유 분방함, 젊음의 정신을 사랑했다고 이야기 하면서 “항상 나는 90년대 초반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 그 당시는 슈프림이 무엇을 하던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 할 때, 우린 그 시기를 다시 재조명해보곤 한다. 이건 추억 감상에 젖는 시시콜콜한 일이 아니라, 우리 안에 1990년대가 살아있음을 다시금 되새기는 일이다.”
 
그는 또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스케이트 보더들이란, 12살, 13살, 혹은 14살과 같은 어린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뉴욕에서는 18살부터 24살의 스케이트 장비를 입지 않는 젊은이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뉴욕의 젊은이들은 헬맷과 같은 장비는 갖추었을지언정, 스케이트에 걸맞는 ‘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라고 하며 이 사실에 주목했다고 고백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내는 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들은 그저 스케이트라고 하면 커다란 배기 팬츠(Baggy pants), 뒤로 돌려쓴 모자를 쓰고 커다란 체인을 단 껄렁 껄렁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고, 스케이트가 하나의 문화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길거리 위 서브 컬쳐의 모든 양상을 담아내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제비아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스케이트 보더들의 수는 많았지만, 제대로 된 스케이트 샵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좋아. 까짓꺼, 내가 스케이트 샵을 만들겠다고.”
 
슈프림 뉴욕 매장(출처 : www.supremenewyork.com)
 
마침내 제임스 제비아는1994년 12,000달러(한화 약 1,300만 원)을 들여 뉴욕 다운타운의 라파에트 스트리트(Lafayette Street)에 첫 슈프림 매장을 세운다. 1994년의 미국 경제 시장은 불황을 맞고 있었지만 그건 제임스 제비아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슈프림의 시작이 소위 말하는 ‘대박’은 나지 않았지만, 슈프림은 슈프림 나름대로의 매니아층을 탄탄히 쌓아갔다. 브랜드의 이름인 슈프림은 제비아가 즉흥적으로 붙인 것이었는데, 후에 이는 상표 등록이 될 수 없는 이름이여서 문제가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슈프림이라는 이름을 소유하지 못하다가, 2013년 3월 6일 마침내 슈프림의 박스 로고를 정식으로 등록하게 되었다.
 
캘빈 클라인 광고에 붙은 슈프림 스티커(출처 : streetwearbrandingcolaborations.tumblr.com)
 
슈프림의 로고는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프로파간다 아트(Propaganda art), 선전 포스터를 예술로 승화한 그녀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빨간 직사각형의 네모 안에 퓨추라 볼드 이태릭 폰트(Futura Bold Italic)로 쓰여진 슈프림 글자체 그리고 이 빨간 박스 로고는 스티커로 만들어져 뉴욕의 길거리 곳곳에 붙여졌다. 영국의 탑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가 속옷을 입고 등장한 브랜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광고에도 슈프림은 역시 그들의 로고 스티커를 붙였는데, 이로 인해 캘빈 클라인은 1994년 한 차례 슈프림을 상대로 고소를 한 바 있다. 슈프림은 10년 뒤인 2004년에 케이트 모스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논란이 되었던 이 광고를 실제 티셔츠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슈프림은 방송에 상업 광고를 내지도, 유명한 패션 매거진들에 그들의 광고를 실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제임스 제비아는 그저 사람들이 슈프림에 대해 끊임 없이 떠들어대길 바랬다.
 
그의 첫 슈프림 매장은 뉴욕의 길거리와, 길거리를 둘러싼 모든것들을 담아낸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었다. 그의 뉴욕 매장에는 문턱이 없어 스케이트 보더들이 그들의 보드를 타다가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 슈프림의 매장 직원들은 실제 스케이트 보더들, 아티스트, 제비아의 친구들 등이었으며 ‘슈프림’이라는 이름의 스케이트 팀도 존재 하였다. 오와우(Ohwow) 갤러리의 오너이자, 온라인 방송국 노 웨이브(KNOW WAVE)을 설립한 애런 본다로프(Aaron Bondaroff)는 1990년대 슈프림에서 직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뉴욕 타임즈紙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초기에 고객들은 슈프림에 진열된 물건들을 볼 수는 있었지만 만질 수는 없었다. 잘 개어진 티셔츠를 흐트려놓는 순간, 누구든 직원으로부터 욕지꺼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
 
뮤직 비디오 감독이자 아티스트, 디제이로 활동하는 바쉬티 콜라(Vashtie Cola)도 그녀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내가 슈프림 매장에 처음 걸어 들어갔을때, 난 어린 여자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겁을 먹었었다. 그 곳에는 ‘진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슈프림은 ‘진짜’만이 허용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꿰뚫어본다.” 이렇게 콧대 높은 슈프림 매장의 운영 방식에는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누구든, 슈프림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스토어를 방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이한 판매 방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슈프림에 열광했다. 슈프림의 초기 티셔츠는 단 3가지 버전만이 존재했는데, 슈프림의 빨간 박스 로고가 그려진 로고 티셔츠, ‘아프로 스케이터(Afro Skater)’,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배우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가 연기한 ‘트래비스 비클(Travis Bickle)’이었다. 1995년에는 그들의 첫 스케이트 비디오인 ‘러브 슈프림(A Love Supreme)’을 촬영했다. 이는 후에 2014 F/W에 발매한 티셔츠에 쓰이기도 한다. 슈프림은 80년대 힙합, 밀리터리 룩 등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었고, 슈프림에서 파는 제품들의 가격은 다른 럭셔리의 제품들처럼 그리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니었다.
 
슈프림과 작업한 첫 아티스트는 래멀지(Rammellzee)였는데,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아티스트 바스키아(Basquiat)의 친구이자 그와 앨범을 제작한 힙합 뮤지션이기도 하다. 인터뷰紙에서 제임스 제비아는 “래멀지는 우리가 처음 함께 스케이트 보드 덱을 만든 아티스트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티스트 라이언 맥기네스(Ryan McGinness) 그리고 카우스와 했고. 래리 클락과 함께한 덱은 마치 ‘이거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끝내주는군.’ 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아티스트 제프 쿤스가 래리 클락의 덱을 보고 좋아했고, 곧바로 우리와 작업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슈프림과 데미안 허스트의 콜라보레이션(출처: respect-mag.com)
 
슈프림은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끊임없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인기의 상승 궤도를 달렸다. 1996년에는 브랜드 반스(Vans)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운동화를 내놓았는데, 반스가 슈프림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시도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2000년 자전거 회사인 브루클린 머신 웍스(Brooklyn Machine Works)와 함께 협업하여 제작한 24인치의 크루저 바이크는 하나에 1,800달러(약 2백만 원)에 팔렸다. 이밖에 슈프림은 브랜드 나이키(Nike), 노스 페이스(The North Face), 사진 작가 테리 리차드슨(Terry Richardson), 아티스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매거진 플레이보이(Playboy) 등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특히 제임스 제비아는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가 아티스트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과 콜라보레이션한 핸드백을 내놓기 전, 슈프림과 스케이트 보드 덱을 콜라보레이션 하여 내놓았던 점을 강조했다.  
 
제임스 제비아는 이 후 천천히 슈프림에서 만들어 내는 라인들을 늘려나갔다. 티셔츠와 후드같은 옷부터 스포츠웨어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 관련 상품들까지 보통의 기업과 브랜드들은 규모 확대를 목표로 세우지만, 슈프림은 달랐다. 스케이트 브랜드에서 시작한 슈프림은 스트리트 패션의 리더로 자리 매김하며 모자, 셔츠, 라이터, 물통, 이쑤시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냈다. 제임스 제비아의 현재 개인 자산은 4,000만 달러(한화 약 475억 원)으로 추정된다.
 
슈프림이 이렇게 계속해서 인기를 얻어갈때, 많은 사람들은 뉴욕 내 다른 곳에도 매장이 개설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제임스 제비아의 고집은 확고했다. 1999년, 슈프림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일본 도쿄에 첫 인터내셔널 스토어를 열었다. 슈프림은 현재 미국에 뉴욕과 LA두 곳만, 영국 런던에 한 곳, 프랑스 파리에 한 곳, 그리고 일본 도쿄에 하라주쿠점, 시부야점, 다이칸야마점 등 총 세 곳을 가지고 있고,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에 공식 지점을 갖고 있다. 제임스 제비아는 비지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우리는 미국 뉴욕 브랜드이지만, 세계적인 브랜드기도 하다. 나는 많은 브랜드들이 실패하는 것을 보았다. ‘안녕, 여길 좀 봐, 우리 뉴욕에서 왔어, 그리고 이게 우리야.’ 이게 다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뉴욕에서 왔다고 해서, 뉴욕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뉴욕에서의 정신을 잃지 않되 현지 시장을 파악하고 그에 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일본이건, LA건, 런던이건, 어디가 되었던간에 말이다.”
 
슈프림은 직원을 채용하는 방식에도 제임스 제비아만의 신념이 담겨져 있는데, 보통 슈프림의 새로운 직원들은 슈프림 현재 직원들의 친구, 가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일종의 소규모 ‘슈프림 커뮤니티’와 같은 것으로 제비아는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스토어에 그의 스타일, 인성, 개성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라고 말하며 매장의 직원들도 슈프림의 정신과 스타일을 담아낼 수 있는 개성 강한 사람이여야 함을 이야기 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런던에 위치한 슈프림 매장에는 제임스 제비아가 직접 1980년대 스케이트 전설인 댄 재거(Dan Jagger)를 스토어 매니저로 채용하였고, 2016년 새로 문을 연 파리의 매장에는 프랑스 스케이트 보드 회사인 미누시아(Minutia)의 창립자 사미르 크림(Samir Krim)을 매니저로 임명했다.
 
명성이 있는 곳에 항상 논란이 있듯, 슈프림은 여러 번의 소송에 휘말린 경우가 많은데, 2000년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패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스케이트 보드 때문에 루이비통에게 판매 중단 요청을 받고,  2007년에는 전미대학체육협회(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NCAA), 2009년에는 내셔널하키리그(National Hockey League, NHL)에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2004년 ‘메리드 투 더 몹(Married to the Mob)’이라는 브랜드는 ‘슈프림 비취(Supreme Bitch)’라는 슈프림과 같은 박스 로고의 티셔츠를 출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제품이 생산된 지10년이 지난 후 슈프림은 해당 브랜드에게 고소장을 날렸다.
 
슈프림 제품을 정식 발매 일에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슈프림 공식 홈페이지의 온라인으로 오전 11시에 맞춰 구입하는 것과 슈프림 매장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도 2010년 10월 9일 슈프림이 공식 온라인 숍을 열기 전에는 오로지 매장 구매만이 가능했었다. 사람들이 첫 출시 되는 아이폰을 가장 빠르게 사기 위하여 스토어 앞에서 침낭을 펴고 캠핑을 하듯이, 슈프림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도 일 년에 여러 차례 슈프림을 위한 캠프를 차린다. 어떠한 사람들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여 슈프림 매장 앞에 기다리는 줄을 대신 세우게 하기도 하고, ‘슈프림 봇(Supreme Bot)’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슈프림을 온라인으로 재빠르게 사려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수 백, 수 천, 수 만 명의 사람들이 24시간, 혹은 그보다 더한 시간을 슈프림의 티셔츠 한 장 또는 모자 한 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슈프림은 나이키나 랄프 로렌(Ralph Lauren)과는 다르게 대규모의 상점에서 판매되거나, 홍보를 크게 하지 않는다. 슈프림이 ‘매진 임박’과 같은 문구를 띄우기도 전에, 그들의 상품은 빠른 시간 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슈프림의 비지니스 모델은 간단한 경제이론에 의해 정리된다. 슈프림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수록, 슈프림의 가치가 더욱 더 올라간다. 하지만, 슈프림의 공급은 한 번도 수요 이상으로 확대된 적이 없다. 어떤 브랜드에서 한 제품이 잘 팔리기 시작하면, 보통 그 제품의 재고는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슈프림은 어떠한 제품이던 재고를 채워놓지 않는다. 이 말은, 슈프림이 내놓은 신상 제품을 한번 놓치는 순간, 그게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리미티드 에디션 ‘한정판’의 의미이다. 제임스 제비아는 인터뷰紙에 만약 슈프림에 600명의 수요가 있는 제품이 있다면, 슈프림은 오로지 400개만을 만든다고 이야기 했다.
 
한정판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때 그 가치가 생겨난다. 슈프림을 향한 수요는 항상 높고, 공급은 항상 적다. 슈프림의 재고는 이미 매진이 되었지만, 슈프림을 원하는 이들은 너무도 많다. 따라서 당연히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이 자연스레 생겨나기 마련이다. 세컨더리 마켓이란 일반 정상 판매가 끝난 이후에 제품을 거래하는 2차적인 유통 시장을 이야기한다. 슈프림의 팬들 그리고 슈프림의 신봉자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알게 되자, 세컨더리 마켓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컴플렉스(Complex)紙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솔드 아웃: 슈프림 리셀러들의 지하 경제 시장(Sold Out: The Underground Economy of Supreme Resellers)’에서는 슈프림을 구매하는 세컨더리 마켓을 다음과 같이 4가지 분류로 나누었다. 이베이, 디투씨(D-2-C), 컨벤션(Conventions),위탁 판매(Consignment).
 

슈프림의 세컨더리 마켓(출처 : www.complex.com/)
 
이베이는 슈프림의 상품을 사고 파는 이에게 오랫 동안 가장 많이 이용되어진 1:1 온라인 경매 사이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만큼, 슈프림의 가품 제품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온라인 경매가 이루어지면 이베이는 각각의 거래에서 10%를 가져간다. 디투씨는 ‘다이렉트 투 커스터머(Direct to Customer)’의 줄임말로, 주로 SNS에서 이루어지는데 인스타그램에 리셀러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티셔츠의 사진을 올리면 고객이 사진 밑에 코멘트를 달아 협상하는 방식이다.
 
컨벤션은 스트리트 웨어와 스니커즈 마켓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방식으로, 플리마켓처럼 대규모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물건을 사거나 팔고 트레이드 할 수 있게 만든 형식이다. 위탁 판매는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이베이 계정을 통해 리셀러에게 고객이 직접 주문을 하고 수고비를 가져가는 식의 방식이다.
 
제임스 제비아는 세컨더리 마켓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난 리셀러 시장을 정말 싫어한다. 우리(슈프림)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격에 제품을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온라인 중고 사이트 이베이(eBay)에서 우리 제품을 보게 되면, 가격들이 최소 2배 이상 뛰어 있다. 간단하게 말해, 나는 티셔츠 한장으로 사람들을 농락하며 돈을 버는 장사치들을 싫어한다. 그게 사기꾼과 다를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난 우리 옷을 입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우리 옷을 누군가에게 팔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슈프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산량을 절대 늘리지 않는다. 지금도 슈프림은 세컨더리 마켓에서 가장 뜨거운 브랜드이다.
 
단 세 장의 티셔츠로 출발했던 슈프림은 다양한 아티스트, 브랜드들, 셀러브리티들과 획기적인  콜라보레이션들을 시도하며 스트릿 브랜드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수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매주 목요일마다 오전 10시 49분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 슈프림이다. 슈프림은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놀랍도록 나이 들지 않는다. 슈프림에서는 성별도, 나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슈프림은 라이프 스타일이며, 애티튜드(Attitude)이기도 하다. 많은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새로운 슈프림이 되기를 바라지만, 슈프림의 지난 역사에는 슈프림이 시간과 공을 들여 쌓아온 고객들과 그들만의 끈끈하고 두터운 의리가 있다. 이것은 브랜드를 시작하는 이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인다고 해도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슈프림은 살아 남기 위해 이름에서 오는 그 자체로 슈프림이 되어야만 했다. 다음에는 슈프림이 어떤 상상력과 기발함으로 세계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지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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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등 유리할머니 2016.09.16. 20:09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도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을듯한 정도로 유명세를 탄  슈프림

이게 바로 기막힌 장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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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수풀림 2016.09.28. 14:58
글 잘봤습니다. 퍼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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